전기차 보조금의 역설…테슬라 빼곤 가격 인하 노력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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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4-04-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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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전기차 시대를 선도하는 테슬라가 다시 한번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난 4월 4일 테슬라는 부분 변경을 완료한 자사 전기차 ‘모델3’의 가격을 공개했다. 테슬라는 ‘시가’라는 말이 나올 만큼 들쭉날쭉한 가격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날 공개된 가격은 2021년 수준으로 회귀했다. 사륜구동(모델3 롱레인지) 차량 기준으로 3년 전과 같은 5999만원이었다.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한 후륜구동(RWD) 모델은 5199만원이었다. 아직 RWD 모델에 대한 전기차 보조금 액수가 확정되지 않았는데 세금을 제외한 실구매가는 5000만원대 아래로 내려갈 것이 유력하다.
테슬라는 과거에도 신차를 공개할 때면 공격적인 판매 전략을 선보였다. 후발주자들은 테슬라의 정책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2021년 정부가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100% 받을 수 있는 차량가격을 6000만원 미만으로 설정하자 테슬라는 당시 주력 차종이었던 모델3 롱레인지의 판매가를 6000만원에서 딱 1만원 내린 5999만원으로 설정했다. 이후 이런 방식의 가격책정이 전기차 판매 전략의 기본이 됐다.
지난해에는 모델Y에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한 RWD 모델을 시장에 선보였다. 전기차 안전성에 대한 의심,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는 한국에선 실패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한국수입자동차협회가 지난 4월 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모델Y는 지난달에만 5934대가 팔렸다. 내연기관을 포함한 모든 수입차 중 판매 1위다. 언론, 누리꾼의 중국산 LFP 배터리에 대한 우려와 달리 실제 시장은 테슬라의 가격정책에 호응했다.
파격적으로 보이지만 테슬라의 이러한 행보는 일관적이다. 원가절감과 이를 통한 실구매 인하가 테슬라가 잡은 확실한 방향이다. 상대적으로 값싼 중국산 LFP 배터리 탑재나 중국 기가팩토리(공장)에서 차량을 생산해 물류비용을 줄이는 것도 이러한 방향성 위에 있다. 과거 사례대로라면 테슬라를 좇는 후발주자들은 전기차 가격 인하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국내 전기차 업계에는 기술개발 등을 통한 가격 인하 전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가 자사의 주력 전기차를 부분 변경해 내놓은 더 뉴 아이오닉 5의 가격은 이전 모델과 같았다. 애초에 값이 싸서 그런 게 아니다. 아이오닉 5 4륜 모델은 가격폭이 5700만원부터 6400만원까지다. 현대차의 몇몇 모델은 판매가가 테슬라보다 비싸기도 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격 경쟁력이 있다. 현대차에 유리한 정부 전기차 보조금 규정 때문이다. 올해 규정대로라면 현대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6는 정부 보조금을 100% 받을 수 있다. 반면 테슬라는 어떤 모델을 선택하든 보조금 100%는 받을 수 없다.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목표로 만들어진 정부 보조금이 산업 보호만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지난해 하반기 한국 시장에 공개된 모델Y RWD의 가격은 혁명적이었다. 해당 모델은 중국산 LFP 배터리를 탑재했다. 전기차 배터리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삼원계(NCM) 배터리나 LFP 배터리는 모두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하면서 전기를 발생시키는 ‘리튬 배터리’다. 양극에 있던 리튬이온이 음극으로 이동하면 충전, 음극에 있던 리튬이온이 양극으로 이동하면 방전인 식이다. 리튬은 원소 상태에선 반응이 불안정해 리튬에 산소를 더한 ‘리튬산화물’ 형태로 양극에 사용한다. 이러한 리튬산화물을 ‘양극 활물질’이라고 부르는데 이 양극 활물질을 어떤 성분을 결합해 만들었느냐에 따라 LFP와 NCM으로 나뉜다.
LFP는 말 그대로 리튬+인산+철의 결합이다. 그래서 리튬인산철 배터리다. NCM은 니켈+코발트+망간의 결합이다. 이때 망간 대신 알루미늄을 넣으면 NCA,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을 모두 넣으면 사원계 배터리(NCMA)가 된다. LFP와 NCM의 구성이 다른 만큼 배터리의 성능도 다르다. LFP는 NCM보다 에너지 밀도, 용량, 안정성 등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차의 출력, 용량은 주행가능거리, 안정성은 배터리 수명과 연결된다. 대신 LFP에 주로 사용하는 철은 니켈, 코발트 등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이 배터리를 쓰면 전기차 가격 인하가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각 배터리의 특성은 전기차에 그대로 반영된다. LFP 배터리를 탑재한 모델Y RWD는 지난해 5699만원에 판매됐다. NCM 배터리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모델Y 롱레인지에 비해 주행가능 거리가 100㎞ 정도 줄고, 출력도 감소했다. 하지만 가격이 1000만원 넘게 싸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자에겐 좋은 선택지가 됐다. 특히 지자체 전기차 보조금에 따라 일부 지역에선 4000만원대에 구매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른바 ‘5699 대란’. ‘수입차 판매 1위 모델’은 이렇게 탄생했다.
모델Y RWD 판매량이 늘었다는 것은 전기차 보급이 확대됐다는 의미다. 이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 명분과도 일치한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올해 전기차 보조금 지급 규정에 몇 가지 조항이 추가됐다. 핵심은 지난해 가격 대란을 만든 LFP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 삭감이다. 지난 2월 6일 환경부가 발표한 ‘전기차 성능 및 환경성 제고를 위한 보조금 전면개편’ 내용을 보면, 전기 승용차에도 ‘배터리효율계수’를 도입해 에너지 밀도에 따라 차등 지원하고, 배터리 재활용 가치에 따른 ‘배터리환경성계수’를 새로 도입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에너지 밀도와 배터리 재활용, 수명 등은 LFP 배터리가 갖는 약점이다. 보조금 개편안에는 명시적으로 LFP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 삭감이 적시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LFP 배터리임은 분명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특정 종류의 배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님에도 결과적으로 그 배터리(LFP)의 보조금 산정이 낮게 된 것이라며 배터리 에너지 밀도가 높고, 재활용 가치가 높은 쪽으로 유도하려다 보니 상대적으로 NCM 쪽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LFP 배터리를 사용한 차량의 보조금 삭감은 소비자가 종전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거나 구매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친환경차 보급 확대라는 보조금의 목표와는 배치된다. LFP 배터리가 재활용 등이 어려워 환경보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해도 문제다. 테슬라는 보조금이 삭감되자 모델Y RWD 가격을 5499만원으로 200만원 낮췄다. 결국 소비자가 지난해보다 소폭 더 지출을 해야 한다는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것 외에 보조금 삭감으로 인한 정책 효과는 사실상 없는 셈이 됐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보조금의 목적 중에는 차량 가격 인하도 포함돼 있다. 테슬라가 보조금이 삭감된 만큼 가격 인하를 한 것은 사실인 만큼 목적에 벗어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전기차 보조금 정책 변화의 이유는 단순하다. 어떻게든 테슬라를 잡겠다는 정부와 어떻게든 빠져나가겠다는 테슬라가 숨바꼭질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며 그 결과가 국내 기업이 혁신을 이루고, 소비자는 더욱더 값싼 전기차를 살 수 있다면 다행인데 반대로 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 전기차 업계는 원가절감을 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적다. 기존에 탑재하고 있던 NCM 배터리만 잘 유지해도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국내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전체 전기차 판매량이 하향 곡선을 그리는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변화에 나설 이유도 없다. 현대차 관계자는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현대차는 LFP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을 언제까지 출시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며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오닉 5 차량 등에 대한 가격 인하 계획 역시 없다고 덧붙였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 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도 태도가 비슷하다. 현재 전기차용 LFP 배터리의 상용화를 대외적으로 밝힌 곳은 SK온 한군데뿐이다. 이마저도 2026년에 가능하다는 정도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는 중국, 한국 등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 일환으로 LFP 배터리를 만들고 있고, 전기차용 LFP 배터리는 만들 예정이라며 구체적 시점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말한 적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삼성 SDI 역시 전기차용 LFP 배터리 생산과 관련해서는 결정된 것이 없다며 우선 2026년까지 ESS용 LFP 배터리를 만들고, 전기차용은 그 뒤다. 전기차용 LFP 배터리는 진출이 아닌 개발 단계라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LFP 배터리의 점유율은 2020년 11%에서 2022년 31%로 상승했다. 2030년에는 40%까지 뛸 전망이다. 이는 기존 NCM 배터리의 점유율 축소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도 모델Y RWD의 성공을 통해 LFP 배터리의 점유율 확대가 전망이 아닌 현실임이 확인됐다. 테슬라는 이미 주력 차종에서 LFP 배터리 탑재 모델과 NCM 배터리 탑재 모델을 모두 생산하며 소비자 수요에 부응하고 있다. 이는 차량 옵션 몇 개를 넣느냐, 마느냐로 등급을 나누는 것과는 근본적 차이다.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은 결과적으로 LFP 배터리를 차별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전기차 관련 기업도 배터리 다변화에 신중하다. 그런데 환경부에 따르면 한국 외에 LFP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에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곳은 없다. 오히려 세계시장에서 LFP 배터리는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기술혁신을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통한 원가절감도 가격 인하도 없는 한국 전기차 업계가 언제까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이 TV를 틀어 보여줬어요.(권민지씨)
전원 구조라 해서 안심했는데, 오후에 오보라는 소식을 접했어요.(남호원씨)
직장에서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김일수씨)
2014년 4월16일. 시민들은 전남 진도군 바다에서 거대한 여객선이 서서히 침몰하는 과정을 TV 화면으로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일터와 학교, 집과 거리에서 지켜본 세월호는 10년이 지났지만 시민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10년 전 안산의 한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이던 고은빈씨(28)는 단원고 애들 사고 났대라며 웅성거리던 목소리를 잊지 못했다. 울며 뛰쳐나가는 아이들을 선생님도 막지 않았다. 고씨는 안산 단원고등학교에 직접 아는 이는 없었지만 친구와 동생을 잃은 이들을 가까이서 봤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의 얼굴을 봤다. 시끄럽고 밝던 아이들의 얼굴이 온통 흙빛이었다고 했다.
고씨의 서랍에는 세월호 참사 추모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 한가득 있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을 곁에서 지켜보던 고씨에게 참사는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감각은 책임감으로 이어졌다. 고씨는 매해 4월1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추모 게시글을 올리고, 늘 보이는 지갑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고씨는 새삼 리본이 한동안 곁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랍 속 리본은 이미 나눠주고 없거나 너무 오래 사용해 해졌다. 최근엔 주위에서도 리본 단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그는 다시 달아야겠다고 말했다.
노란 리본은 ‘무사귀환’의 상징이다. 2014년 4월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구조를 염원하며 너 나 할 것 없이 SNS에 노란 리본을 내걸었다. 주부 이선영씨(53)는 중학생 아들의 반 친구 어머니들이 참사 이후 줄줄이 프로필 사진을 바꾼 것을 기억했다.
무사귀환을 바라던 마음은 추모 열기로 이어졌다. 노란 리본은 세월호 참사 추모의 상징이 됐다. ‘REMEMBER 0416’ ‘잊지 않겠습니다’ 문구가 덧대졌다. 이씨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에게 벌어진 일이 학부모로서 남 일 같지 않았다며 이 비극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있었다고 했다.
전남 진도 팽목항(진도항)과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에도 발길이 이어졌다. 수학학원 강사인 조민호씨(28)는 참사 1년 후 학교 프로그램으로 팽목항을 찾았다. 조씨는 추모공간에 놓인 또래들의 영정사진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는 ‘즐겁게 수학여행을 떠나던 친구들이 세상을 떠났구나’ 싶어 감정이 이입됐다며 여전히 커다란 배나 항구가 보이면 세월호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참사를 기점으로 삶이 달라진 이들도 있었다. 안산에 거주하는 임윤희씨(36)는 참사 후 생애 처음 집회에 참여했다. 한 단원고 희생자의 장례식장에 걸린 앳된 영정사진은 큰 충격으로 남았다. 우리 사회의 생명·안전을 돌아보게 됐다는 그는 이후 시민단체 상근 활동가가 됐다. 추모 열기는 수년간 계속됐다. 직장인 황모씨(32)는 식당에 가도, 학교에 가도, 길에서도 리본을 나눠주던 시절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 많던 리본은 어디로 갔을까. 세월이 흐르며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이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권민지씨(24)는 스무 살이 되던 2019년 1월 가방을 바꾸며, 새로 리본을 달지 않았다. 그는 리본을 따로 다는 게 보여주기식처럼 느껴졌다며 내가 기억하면 추모이지 않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황씨는 만원 지하철에서 가방에 달린 리본을 잃어버렸다 했다. 대학생 때부터 5년간 달았던 리본이었다. 그는 막상 다시 달려 하니 어디에서 구할지 모르겠더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애도의 감정이 옅어지고, 반복되는 참사에 무기력해진 영향도 있다고 했다. 그는 매년 4월이 되면 너무 잊고 살지 않았나 싶어 ‘아차’ 하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노란 리본이 정치적 표현으로 해석되는 데 부담을 느껴 거리를 두게 됐다는 이들도 있었다. 전요한씨(29)는 노란 리본은 추모이자 우리 사회의 문제에 목소리를 내겠다는 결의의 뜻이었지만, 이제는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일로 보인다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 소극적이게 됐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정쟁이 첨예할 때 ‘공격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리본을 뗀 이도 있다. 오승은씨(25)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달고 다니던 리본을 어머니가 몰래 떼어버렸던 기억이 있었다. 오씨는 이상한 사람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수긍이 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달지도 않았다고 했다. 정인혜씨(29·가명)는 실제로 지하철에서 한 중년 남성에게 이런 걸 달고 다니니 여자들이 안되는 거다라는 등의 폭언을 들었다고 했다.
리본을 잊지 않은 이들도 있다. 여수에 거주하는 김지순씨(72)는 휴대전화 케이스에 노란 리본 스티커를 덧대며 지난 10년을 보냈다. 단 한 번도 세월호 참사를 잊은 적 없다는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잊었다기보다는 너무 슬픈 마음에 생각을 묻어둔 것 같다고 했다. 출근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단 직장인 염모씨(57)는 가방을 여닫을 때마다 생각이 난다며 다른 사람들이 제 등에 달린 리본을 볼 때 한 번쯤 세월호 참사를 생각했으면 해서 달았다고 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사는 이철호씨(58)는 가방에 세월호 배지를, 목에는 나무로 된 리본 목걸이를 걸고 다닌다. 외국인 직장 동료들이 목걸이에 관심을 보이면, 그는 한국의 세월호 참사를 설명한다고 했다. 이씨는 멀리서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유가족분들께 자그마한 힘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화순 화가(54)는 참사 9주기를 앞둔 지난해 3월, 그림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단원고 앞에 놓인 커다란 벚나무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어머니들이 직접 뜨개질한 벚꽃을 붙인 그림이었다. 4월16일이면 벚꽃도 피고, 봄비가 많이 와요. 벚꽃을 보기 힘들다던 유가족 어머니들이 마주 볼 용기가 생겼다고 연락해오셔서 함께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참사 직후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김 화가는 유가족과 함께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비극적이게도 ‘잊지 말자’는 말은 2022년 다시 힘을 얻었다. 10·29 이태원 참사를 바라본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고 했다. 프리랜서 상담사 신지윤씨(29)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이후 많은 이가 ‘잊지 않겠다’며 고통스러워했는데, 재난을 겪어도 우리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절망스러웠다며 구급차 소리를 들으면 이태원 참사가 떠오르고, 그러다 보면 세월호가 떠오른다고 했다.
한양대학교 부교수인 이승수씨(59)는 연구실 문에 붙여두었던 노란 리본 곁에 이태원 참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리본을 하나 더 붙였다. 보라색 리본은 이태원 참사 추모의 상징이다. 그는 권력의 무능, 무책임, 비윤리가 두 참사의 공통점이라며 돌아보지 않으면 더 좋은 미래를 만들 수 없다고 했다.
이현주씨(26)는 이태원 참사 이후 어떻게 일상공간에서 사회적 참사를 함께 기억하며 살아가면 좋을까를 고민했다. 고민은 세월호 기억공간과 사람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기억의 공간들>로 올해 결실을 맺었다. 이씨는 촬영을 하러 가면 유가족분들이 차를 태워다주시고, 같이 밥을 먹자고 해주셨다면서 내 친구의 엄마 아빠들이시구나, 그걸 가까이서 뵈며 느꼈다고 했다.
기억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전주에 사는 김시항군(14)은 지난달 17일 아버지와 함께 안산 단원고 4·16 기억교실을 찾았다. 어릴 적 일이라 참사 당시의 기억은 없지만, 김군은 전주 한옥마을 앞 세월호 분향소를 들렀던 경험이 있어 참사를 알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이 쓰던 교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공간을 둘러보던 그는 슬픈 참사였다는 것은 알았지만, 국가가 어떻게 잘못 대처했었는지를 이전까지는 몰랐었다며 왜 이런 참사가 발생했는지, 학교에서 따로 교육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상 속에서 참사를 떠올릴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직장인 정민지씨(29·가명)는 미국 9·11 테러를 보면 그 공간을 아예 비워 추모할 수 있게 하는데, 우리는 왜 계속 지우려고만 하는지 모르겠다. 죽음을 기억하는 데 있어 미성숙하다고 말했다. 조민호씨도 슬프기만 한 공간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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